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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동 시절

1) 용두동 시절: 김승호

 

* 한백은 '그날'의 태동이었다(1986.10 ~ 1989.12)

 

86년 여름 어느 날, 우리 부부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한국신학연구소의 박성준 학술부장과 안병무 박사로부터 보내온 초대장이었다. "교회가 난립하여 그 사회적 역기능이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려 한다"는 역설적인 내용이었다고 기억된다.

 

신학 연구소의 월요신학서당을 통하여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에 처음으로 접하게 된 우리 부부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기꺼이 그 초대에 응했고 지금도 한백교회의 첫번째 예배에 참석하였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우리 부부가 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아직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민중신학에 근거한 성서 해석은 언제나 새로웠으며 우리 나름대로의 예배 형식을 가꾸어 나가는 매주 매주가 놀라움과 기대의 연속이었다. 다음 주에는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길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주를 보내기도 하였다. 당시 운동권에서만 불리던 노래들이 찬송가를 대신하였으며, 그 당시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투쟁을 노래하면서 우리 예배는 그렇게 우리를 의식화시켜 나갔다.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 짤린 하느님,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아버지.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 당한 하느님, 그래도 나에겐 하나뿐인 민중의 아버지. 하느님 당신은 죽어 버렸나?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쓰레기 더미에 묻혀 버렸나? 민중의 아버지.' 이렇듯 불경스러운 '민중의 아버지'를 노래하며 이렇게 예수의 길을 따랐던 수많은 얼굴들을 되새기게 하였다.

 

원통하게 죽어간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 수배당하여 쫓기는 수많은 사람들, 외로운 투쟁을 벌였던 서준식과 온 몸에 화상을 입었던 서승 형제들, 20년 장기수 신영복 선생, 13년의 장기수 였으며 당시 우리들의 스승이었던 박성준 선생, 그리고, 새벽 쓰린 가슴에 찬 소주를 부어야 했던 박노해의 아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그 알량했던 양심에 비수를 꽂았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40여 년을 일말의 회의도 없이 하느님에 대한 충실한 믿음과 열정적인 신앙 활동, 그리고 열렬한 기도 생활을 해왔던 나에게 있어서, 그리고 역시 정통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신앙심 깊으신 부모님 밑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집사람에게 있어서 하느님에 대한 민중신학적 접근은 사실 충격적이었다.

 

또 우리는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살아왔고 법과 질서를 존중함은 물론 양심이 명하는 대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우리에게 한백의 예배를 통하여 알게 된 양심수라는 단어 또한 실로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하던 나의 삶이 나 자신에 의하여 송두리째 부정당하게 되었고, 그 동안 너무나도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결국 나는 그들의 구두 끈조차 맬 자격이 없는 인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공단의 공돌이, 공순이들의 생활을 비웃으며 그들을 도덕적으로 멸시했던 나는,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안식일도 지키지 못하고 정결 의식도 지키지 못한다"고 비난했다가 예수로부터 "뱀 같은 놈들"이라고 욕을 먹어야 했던 바리사이의 한 사람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의식화 되어 가던 우리는 6월 항쟁의 최루 가스 속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역사의 전면에 한걸음 더 가까이 서게 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역사의 방관자였던 우리는 운동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합류 하면서 당시 운동의 목표였던 "그날"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역사의 수레를 돌리는 민중의 힘찬 함성과 함께 "그날"의 태동을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날…" 참으로 우리를 전율 하게 하던 한 마디였다. "그날이 올 때 까지", "그날이 오면", "그날은 오리라", 수많은 노래들이 "그날"을 노래하였고 무수히 많은 전단들이 "그날"을 이야기하며 뿌려졌다.

 

아무도 "그날"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고 또 누구도 애써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그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알고 있었다. 아득한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그날"을 노래하였다. 벅찬 기쁨으로 "그날"을 노래 한 적도 있었다. 깊은 분노와 슬픔 속에서도 우리는 "그날"을 노래하였다. 이렇게 "그날"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은 다시 멀어져 갔고 지친 우리는 좌절하였다. 하지만 그 깊은 좌절 속에서도 우리는 "그날"이 태동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 체험은 우리 선배들이 4·19 혁명 속에서 가졌던 새 질서에 대한 체험이었으며, 짜르의 폭정을 무너뜨린 러시아 민중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체험이었으며, 전봉준 홍경래가 새날의 도래를 확신하며 가질 수 있었던 바로 그 숭고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2천년 전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모두 함께 공유하였던 바로 그 소중한 체험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온몸으로 염원하던 "그날"이 예수가 이미 선포한 하느님 나라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좌절하였던 우리를 다시 서게 하였다. 10년 전 여름 우리 부부에게 보내졌던 그 초대장은 이브가 아담에게 건네어 준 금단의 열매였다. 우리는 기꺼이 그 열매를 먹었고 그 결과 닫혔던 우리의 눈은 뜨여지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가리고 있던 그 모든 위선과 허식이 벗겨지자 알몸뚱이뿐인 나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안주하여 왔던 낙원에서 추방당하였다.

 

더 정확히 말하여 우리는 더 이상 에덴 동산의 노리개이기를 거부하였고, 민중과 함께 고민하며 고뇌하는 새로 태어난 인간임을 선언하였다. 한백은 이렇게 우리를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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