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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백과 찬송

 

1) 한백의 노래: 1차-4차


2) 한백의 노래 5차서문(1995)
* <한백공동체의 노래> 제5개정판(1995) 서문

노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멜로디라는 매체를 빌어 슬픔과 기쁨을, 온갖 정서를, 그리고 갈망을 이야기함에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삶이 들어 있다. 아니 그리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음치의 흥얼거림이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노래의 이러한 이야기성을 상실하곤 한다. 간혹 그것은 단순히 기술이 되고 만다. TV에서 세뇌당할 듯이 지치도록 보고 듣고 느낀 것처럼 말이다. 삶을 표현하기보다는, 가상의 감정을 억지로 지어 보이며 그 고독을, 그 절망을, 그 환희를 위장하는, 그것으로써 타인을 설득시키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도 가상현실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멜로디의 테크닉. 우리는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수없이 이러한 문제에 당혹스러워했다.

나/우리와 별개의 하느님에 대한 노래, 그런데도 이 신을 향해 반응하도록 위협하는 노래, 결국에는 그런 신을 향함으로써 나/우리로 하여금 나/우리 자신으로부터 이탈하도록 끊임없이 설득하고 협박하는 노래, 이런 요구에 스스로를 내면화시키는 데 지쳐버린 우리들은 우리의 노래를 찾고자 했다.

노래 속에서 이야기를 독점하지 않는 신, 느낌을 나누고 갈망을 나누는 신, 이 나눔 속에서 우리와 함께 진리를 추구하고자 고통스러워 하는 신, 그런 신과 우리의 함께 하는 사건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우리는 추구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8년간의 여정 가운데, 벌써 다섯 번째 개정판을 낸다. 실은 이 가운데 몇은 개정이라기보다는 새 것에 가까운 것도 있다. 어쩌면 이번 것도 그러하다고 평가될 만치 많이 바뀌었다. 그것은 이야기성을 회복하고픈 우리의 부단한 노력을 반영한다. 물론 진리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완전한 것도 확실한 것도 없었고, 그리로 향하는 길이 어느 갈래의 길인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또 다시 여기에 이르렀다.

지난 것보다 이 점에서 나은 것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무엇일지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말하기엔 어느 때보다 어린, 덜 성숙한 사람들의 손길이 결정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것보다 좀 더 여러 사람의 관심과 수고가 깃든 것이라는 사실, 심지어는 책의 제작비를 대는 일에까지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는 사실, 이것만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업적이라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서울에 세워진 교회 가운데 이만큼이나 적은 재정규모를 가진 교회는 거의 없을 만치 열악한 형편에서 우리는 한백노래집의 다섯 번째 개정판을, 허리를 잔뜩 펴며 배를 불룩 내밀며 내어 놓는다. 앞으로 언젠가에 나올 제6개정판에서 빛남을 예기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임을 계속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3) 한백의 노래 6차서문(1999)

* <한백공동체의 노래> 제6개정판(1999) 서문
--- 노래를 부르는 사람, 사람을 부르는 노래

흥이 나면 돈 내고까지 노래를 부르러 갈 정도로 우리는 많은 노래들을 부른다. 그리고 그 노래들에 우리들의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바램 등을 실어 보낸다. 아니 사실은 실어 보내고 싶어서 노래를 부른다고 해야 맞을 터이다. 그래서 우리의 노래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한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런데 생각을 약간 돌려보면, 노래라는 것이 단순히 사람이 아무 것이나 선택해서 희노애락애오욕을 실어 보내고 나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이미자에 가슴 미어지는 어머니와 H.O.T에 열광하는 딸이 서로를 이해하기가 어디 그리 쉽던가? 사이버스페이스를 심심찮게 달구는 논쟁 중의 하나가 ‘S.E.S가 좋냐 핑클이 좋냐’는 식의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찬송가 없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고 투쟁가 없는 데모를 생각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면, 이쯤 되면 노래가 사람을 만든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은 노래도, 자기를 불러 줄 사람을 애타게 찾아 부르면서, 마침내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노래를 부르지만, 노래가 사람을 부른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사람을 부른다는 것을 한백식구들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12년 교회 역사 속에 벌써 제6판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제6판까지 오면서 우리는 많은 노래들을 불렀고 또 많은 노래들이 우리를 불러 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부르고 우리를 불러 주는 노래들도 있고, 한때는 우리가 정말 잘 부르고 우리를 정말 잘 불러 주는 노래들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게 된 노래들도 있다. 그리고 새롭게 우리가 부르게 되고 우리를 부르게 된 노래들도 있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우리는 우리의 삶을 노래로 부르려 하고 노래는 노래 자신의 삶을 우리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과 노래의 삶이 변화를 겪어 왔다는 뜻일 터이다. 그 변화들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일 터이다.

이 변화들 속에서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른바 ‘기독교’ 도장이 찍힌 노래들보다도 안 찍힌 노래들이 더 많은 노래책의 구성이다. 어떤 이가 보기엔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타성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기독교’ 도장이 찍혔건 안 찍혔건 모두 똑같이 그 속에서 ‘복음’의 빛을 볼 수 있다는 한백의 신앙고백을 잘 나타내는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는 이 시대에, 그래서 이 제6판은 그만큼 소중한 우리들의 신앙고백이리라.

이 소중한 제6판을 특징짓는 단어는 아마도 ‘성찰’과 ‘꾸준함’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단판승부로 결정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꾸준히 삶을 만들어 가는 속에서 길게 승부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희망. 그래서 많은 노래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또 많은 노래들이 우리와 새롭게 함께 하며, 많은 노래들이 자리에 남았다. ‘성찰’과 ‘꾸준함’의 삶을 함께 누리기 위해.

이 노래들을 부르고 이 노래들이 우리를 부르며 우리가 만들어 갈 삶을 꿈꾸어 본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있게 될 일곱 번째 모음의 순간까지 어떤 노래들이 또 새롭게 우리를 부르고 우리가 부르게 될 지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새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부르고 우리를 부르는 노래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4) 한백의 노래 7차서문(연합찬송가, 2005)

한백의 노래 제7차 개정작업은 에큐메니칼 연합교회와 함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한백찬송가 작업이 한백만의 작업이었다면, 이제부터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교회들이 모여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노래를 함께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번 작업에는 20여개의 교회와 기관이 함께 했고, 한백교회가 전체 실무를 주관했다.

 

에큐메니칼 연합찬송가 <새노래 한소리>를 펴내며


노래는 언제나 노래하는 사람보다 크고 넓으며 또 깊다. 예수와 함께 하느님 안에서 이 세계의 삶을 누리는 우리는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몸짓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삶의 강도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 강하고도 촘촘한 느낌은 물론 온 세계를 감당하고도 남을 용기와 희열과 환희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절망이나 고통, 그리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허무이기도 하다. 신앙 속에서 우리는 단지 짧고 얄팍한 승리감에 취해 노래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딸과 아들들은 언제나 그들이 속했던 세계에서 ‘작은 자’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이 결코 꺾이지 않고 매 시대 부활하는 예수 사건의 중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노래를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노래는 슬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 그리고 분노와 사랑을 구별하지 않고 감싸 안으며, 이 모든 것으로 노래하는 자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 주어진 현실을 딛고 약동하게 하는 동력을 만든다. 우리는 노래야말로 우리를 위로하고 돌보시며 북돋우시고 지혜롭게 하시는 성령의 생생한 실재 그 자체라고 믿는다. 우리는 노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케케묵은 찬송가로는 오늘 우리가 대면하는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꿈틀거리는 우리 영혼의 깊숙한 울림을 표현할 수 없었다. 또 민중가요는 80년대 현장의 생생한 울림이었을지언정, 그간 엄청난 변화를 치른 오늘의 현실에서는 다소 회고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오늘의 현실과 치열하게 맞서고 노래하면서 쉬지 않고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노래 한소리>는 새로운 출발의 서두라기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과거를 재평가하고 오늘 우리의 위치를 점검하는 중간 정리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펴내는 에큐메니칼 연합찬송가의 진정한 의의는 다양한 교파의 적지 않은 교회들이 한국교회의 개혁과 새로운 구성에 동의하면서 다양한 실천을 모색하던 과정의 한 성과였다는 것이다.
처음에 <새노래 한소리>는 한백교회가 창립18주년을 기념해 그간 사용하던 <한백의 노래>를 개편하려는 단일 교회 차원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살림교회와 천안살림교회가 세 교회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찬송가를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사업은 교회연합 차원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이 사업은 창립을 준비하는 에큐메니칼 연합교회 준비위원회가 동참하면서 여러 교회의 관심사가 되었다. 결국 여러 교파, 우애로운 형제 교회들이 한뜻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중간 정리’라는 의미에 걸맞게 <새노래 한소리>는 절충과 종합의 성격을 갖는다. 여기에는 일부 개사한 기존의 찬송가도, 민중가요와 민중복음성가도 있고, 또 떼제공동체의 노래와 함께 시대성을 갖는 대중가요, 심지어 최근의 언더그라운드 락그룹의 노래까지 포함되어 있다. 시대성을 가지면서도 실천의 활력을 일으키고 또 다양한 신앙의 정서와 긴밀하게 교감하는 찬송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이란 일단 찬송의 범주를 대폭 넓히는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일단 신앙을 세계와 유리된 교회 안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극복한 수준이 아닐까? 우리는 이 찬송가집을 편집하면서 정말 제대로 된 찬송, 우리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고, 우리를 회복시키고 북돋게 하며 더 창조적이고 더 생동하게 만들 노래집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 찬송가는 바로 그러한 찬송가를 예고하는 일종의 징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작은 열매나마 맺기 위해 기꺼이 애쓴 여러분들이 있다. 이들이 기대하는 가장 큰 보상은 이 찬송가가 보다 많은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성령으로 생동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2005. 10. 15


 

에큐메니칼연합 찬송가위원회
한백교회(기장), 천안살림교회(기장), 한살림교회(기감), 애빈교회(복음), 남녘교회(복음), 희년마을교회(예장), 다솜교회(예장), 미래에서 온 교회(복음), 더아모교회(독립), 순천하늘씨앗교회(독립), 명덕교회(복음), 들꽃교회(기감), 김제성당(성공회), 광주성당(성공회), 낙골교회(복음), 빈들교회(복음), 솔샘교회(예장), 꿈꾸는교회(예장), 사랑꽃피는교회(예장), 작은예수마을교회(예장), 길갈교회(기성), 한국기독학생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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