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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한백교회   1768번째 모임 (2017년 09월 03일)
 
휴브리스라는 유행병

 

오만한 사람을 치면, 어수룩한 사람도 깨닫는다.
명철한 사람을 꾸짖으면, 그가 지식을 얻는다.
―〈잠언〉 19,25

 

이 구절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오만한 사람’, ‘어수룩한 사람’, 그리고 ‘명철한 사람’. 본문의 전반부는 ‘오만한 사람’을 치면 어수룩한 사람도 깨닫는다고 합니다. ‘친다’라는 표현은 ‘탁케’(ṯak·keh)라는 히브리어로 제1성서에 6번 나오는데, 모두 ‘칼로 내려치다’, ‘공격하다’는 용례로 쓰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마도 이 구절에서는 신이 오만한 사람을 징벌한다는 의미일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오만한 사람이 몰락해서 사회적으로 징벌을 당하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만한 사람이 몰락하면, 그것을 보고 어수룩한 사람도 조심할 줄 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명철한 사람’은 히브리어 러나보은(lə·nā·ḇō·wn)을 옮긴 것인데,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워호키아’(wə·hō·w·ḵi·aḥ)하면 야빈(yā·ḇîn)한다고 합니다. ‘워호우키아’는 가볍게 징책하거나 말로 징책하는 것을 뜻하고, ‘야빈’은 앎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명철한 사람은 가벼운 곤란을 겪는 것으로도 족히 지혜를 얻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해서 이 구절은 전체적으로 그 의미가 간단하고 상식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리숙해도 오만한 자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는 것을 보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명철한 이는 조그만 시련에도 족히 세상의 지혜를 얻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한데 이 세 부류이 사람 중, 첫 번째 나오는 ‘오만한 자’는 어떻게 될까요? 문맥상 그는 단지 타인이 어찌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도구적 존재로만 등장할 뿐입니다. 그는 과연 저 중한 징벌 앞에서 깨닫게 될까요?
‘오만한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스’(lêṣ)는 제1성서에 11번 나오는데, 그중 10번이 〈잠언〉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도 이 용어는 예외 없이 잘못에서 돌이킬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로 나옵니다. 가령 〈잠언〉 9,7~8에는 ‘오만한 자’를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오만한 사람(거만한 자)을 훈계하면 수치를 당할 수 있고, 사악한 사람을 책망하면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오만한 사람(거만한 자)을 책망하지 말아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렵다.” 그를 (적대하는 대신) 훈계하는 데도 그는 보복을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본문에서 ‘오만한 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징벌을 받아 몰락하는 순간에도 성찰하지 못하는 자인 것이지요.
이런 자를 가리키는 ‘레스’라는 히브리어와 꼭 맞는 그리스어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휴브리스’(hubris)일 것입니다. 이 단어는 기원전 8세기의 고대그리스 서사시 작가 호메로스(Homeros)의 작품인 《일리아스》(Ilias)에서 매우 의미심장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리아스’라는 제목은 트로이아국(Troia)의 수도인 ‘일리온의 노래’라는 뜻인데, 트로이아 전쟁 막바지 51일간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는 서사시라는 것입니다.
한데 이 책 끝부분인 24장에는 트로이아의 왕자 헥토르(Hektor)의 시신을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우스(Achilleus)가 전차에 매달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조롱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을 호메로스는 ‘오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휴브리스’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승리에 취해서 마치 신이라도 된 양, 오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결국 트로이아의 왕자인 파리스(Paris)가 쏜 화살이 자신의 약점인 발목을 꿔뚫어 버림으로써 이 용맹한 장군은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렇게 호메로스에게서 ‘휴브리스’라는 단어는 신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오만함을 가리켰고, 그 속에는 오만함이 동반하는 폭력적인 행동이 함축되어 있고, 그것이 결국 그 자신을 파멸시킨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훗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에 의해서 역사를 해석하는 그 자신의 핵심 개념으로 재해석됩니다. 그의 역작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를 반전을 이끌어낸 창조적 소수(the creative minority)가 독점과 아집으로 폭력을 휘둘러대는 지배적 소수(the dominant minority)로 변절되곤 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말입니다. 즉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신화를 과신하여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오인함으로써 결국에는 그 자신과 사회를 함께 파멸에 빠뜨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인 것이지요.
이후 휴브리스는 주로 경영학 용어로 널리 사용됩니다. 창의적인 기업가가 커다란 성공을 이룩하였지만, 오만과 독선에 빠져 기업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그렇고 그런 얘기로 말입니다. 가령 세계적인 경제전문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독일의 3대 완성차 회사들(다임러벤츠, 폭스바겐, BMW)이 휴브리스에 빠졌다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었지요. 휴브리스의 이런 용례들은 사건 혹은 역사에서 성공이 파국을 동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수렴됩니다.
이제 얘기를 앞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저는 앞에서 〈잠언〉 19,25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레스’를 《일리아스》의 휴브리스로 옮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만이 파멸을 낳았다는 점에서 양자는 맞물립니다. 한데 토인비는 휴브리스를 성공이 함축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레스’에도 성공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일까요?
저는 적어도 〈잠언〉의 용례에서는 그런 점이 전제되고 있습니다. ‘오만한 자’ 그들은 사회 속에서 성공한 자들이고 권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잠언〉에는 성공하여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가지게 된 자에 대하여 두 가지 모순된 용례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가령 “게으른 사람은 아무리 바라는 것이 있어도 얻지 못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의 마음은 바라는 것을 넉넉하게 얻는다.”(13,4)고 말하는 대목에선, 부를 획득한 것은 부지런함의 결과라고 단순화하는 듯이 보이는데, “부유하나 구부러진 길을 가는 사람보다는 가난해도 흠 없이 사는 사람이 낫다.”(28,6)에선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부정과 불의가 자행되는 현상을 고려하는 듯이 보입니다. 물론 부과 권력의 과정에는 두 가지 경우가 다 있을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두 모순된 구절은 〈잠언〉의 관점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합니다.
한데 분명히 오만한 자, ‘레스’는 후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의 성공 과정은 불의・부정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여 〈잠언〉은 ‘레스’들의 성공을 미화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그들의 성공 자체가 불의와 부정의 산물이라는 따가운 비평을 가하고 있고 바로 그것이 그들을 파멸시키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토인비의 휴브리스와 〈잠언〉의 ‘레스’는 동일한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요컨대 〈잠언〉의 저자는 ‘레스’에서 토인비의 ‘휴브리스’ 개념처럼 성공과 파멸의 속성을 동전의 양면처럼 내장한 자를 비판적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70인역성서’라고 불리는 《셉투아긴타》(Septuaginta)가 ‘레스’를 ‘로이모스’(loimos)로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단어는 ‘유행병’을 뜻합니다.
저는 이 번역어가 매우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휴브리스’와 같은 함의를 지닌 ‘레스’는 자칫 지도자 혹은 권력자 개인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는데, 유행병이라는 뜻의 ‘로이모스’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속성으로 그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박정희의 성공 비결을 흔히 그가 권력을 독점하여 성공에 집중 투자한 결과라고 해석합니다. 한데 그것이 동시에 독재체제를 낳았고 그를 파멸시켰으며 국가를 위기에 놓이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의 휴브리스를 문제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셉투아긴타》처럼 ‘레스’를 ‘휴브리스’ 대신 ‘로이모스’로 번역하면 국가의 위기는 박정희 개인의 속성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다수에게 확산된 ‘독점적 권위주의’라는 유행병의 차원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권인숙 교수는 지난 2005년 《대한민국은 군대다》라는 문제적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이 책은 반독재민주화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한 이들조차 중증의 권위주의의 질병을 앓고 있었고, 그것은 정치뿐 아니라 일상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독재체제를 청산하고자 했던 민주주의적 체제 역시 권위주의 체제와 오버랩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제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독재자의 오만함, 그의 휴브리스를 넘어서 유행병으로 확산된 한국사회의 집단적 오만의 병을 이야기함을 통해 우리사회의 위기를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반독재체제의 청산이 권력자 한 사람의 제거만으로 수행될 수 없고, 우리 모두가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에서 언급한 세 부류의 사람, 즉 오만한 자, 어리숙한 자, 명철한 자는 결국 셋이면서 하나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 몸에 전염된 오만의 병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오만한 자의 파멸의 운명에서 우리 자신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명철한 자가 되려면, 오만의 병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안의 독재자를 제거하는 부단한 성찰의 길에 들어서야 할 것입니다.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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