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한백과 예배

공지사항
9월 둘째 주 2017-09-11
9월 첫째 주 2017-09-04
8월 넷째 주 2017-09-02
8월 셋째 주 2017-09-02
8월 둘째 주 2017-09-02
사진마당
Atachment
첨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구운 물고기 한 토막

: 욕구 해석 혹은 성서 해석의 정치에 대하여

1766차 예배(2017.8.20)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유승태 전도사

 

그들은 너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그래서 그들이 예수께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렸다. 예수께서 받아서,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 누가복음 24:41~43

 

1. 부활하신 예수의 ‘욕구’

예수께서 전하신 하느님 나라나 복음이 대체 뭐냐, 는 질문을 간혹 받습니다. 이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누구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신학적 개념들 속에서 찾고자 한다면, 질문 ‘연타 공격’을 받다가 답하려는 당사자부터 결국 ‘시험에 들’ 것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느 선생님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고 하신 것은 결국 ‘병고치고 밥을 먹인 것 밖에 없다’고 요약한 분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만큼 예수의 선포행위가 갖는 ‘내용’을 잘 드러내는 것이 없을 듯합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교훈적 말씀을 많이 남기셨지요. 그럼에도 예수의 가르침과 선포를 잠시 괄호 안에 두고 보면, 예수의 행위(에 대한 기록) 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은 병을 고치고 밥을 먹인/은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수와 ‘밥 먹기’는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일에 많은 힘을 쏟은 듯합니다. 오죽하면 예수님 별명이 ‘먹보에 술꾼’이었겠습니까?(마11:19=“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오늘 성서 본문은 부활한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기 전 제자들과 재회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께서 먹을 걸 찾으셨다고 묘사하는 성서가 왠지 짓궂게 느껴집니다.

어쨌든 오늘의 본문에서 보시는 것처럼, 부활한 예수는 ‘허기’로 해석될 수 있는 욕구를 표현했고, 제자들은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렸으며, 예수는 그것을 받아 맛있게 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왜 제자들은 ‘한 토막’을 드렸을까요? 제자들이 예수님의 ‘양’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요(한 토막이 충분히 배부를 만큼 커서, 또는 예수님이 워낙 소식하셔서)? 아니면 먹을 수 있는 생선이 그거밖에 없었던 걸까요?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이 대체 무얼 뜻하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성서 내부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답이 하나이지도 않고, 더 우월한 답변이 다른 해석들을 열등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신학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는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물어 뜯어보는 데서 말입니다.

 

2. 욕구 해석의 정치

조금 다른 이야기를 좀 우회해보겠습니다. 지난 7월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7530원으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통과됐습니다. 이 결정이 있기 한 달 전, 최저임금을 주제로 한 수다모임에서 어느 정도의 임금이면 ‘생활’이 가능한가, 를 토론한 적이 있습니다. 토론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단계에서 최저임금을 계산하기 위한 복잡한 식을 참조하지 말고, 자신이 한 달을 사는 데 필요한 최저 생활비를 계산해보고 그걸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도출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화면으로 보시는 것이, 한 청년이 이 제안대로 자신의 생활비와 그에 근거한 최저임금을 도출한 것입니다. 이걸 보시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이 토론을 하고 나서는 최저임금 1만원 도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어떤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제안하고 결정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추산해보자고 제안한 것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최저 기준이 도출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런 방식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조직 사례를 접하기도 했는데요,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뷰했던 한 카페가 그랬습니다. 이 카페 직원들은 회의를 통해 얼마를 받으면 좋겠는지 솔직한 대화를 했고, 최소한 180만원은 받아야 생활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카페 대표는 이 금액을 토대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했고, 쉽지는 않지만 여전히 운영을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 돈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 필요한 만큼의 임금을 일터에 요구하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협의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경영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정해진 임금에 억지 동의를 해야 하지요.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결정된 임금으로, 필요에 맞게 쓰며 사는 것이 아니라, 돈에 맞게 필요한 것을 절제하며 삽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임금 결정방식과 최저임금위원회의 그것이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궁금해 하실 수도 있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로 밝히고 있어, 어차피 생계비가 고려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적정한 생계비라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당사자와 재화의 관계라는 것을 떠나서 결정될 수 있는 것인가요? 예를 들면, 10만원이라는 돈은 누군가에게는 쉽게 벌고, 쉽게 빌려줄 수도 있는 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돈을 쓰면 (병이 낫는 것도 아닌데 밥을 사먹을 돈은 줄기 때문에) 병원 가는 것을 참아야 하는 액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10만원이 없는 사람은 10만원의 ‘결여’를 채워준다고 해서 그의 끊어진 사회적 관계망이 복원되거나 붕괴된 자아가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돈의 액수를 중심으로 사고하면 인간의 욕구 중 결국 화폐의 양으로 치환 가능한 것만 공공적 가치를 갖는 욕구로 인정받게 됩니다. 물론 화폐 단위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공공적 가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깊은 골이 있고, 후자는 전자보다 더 넓은 범주의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의’를 전제하는 공공적 가치란 대부분의 경우 화폐단위로 수렴됩니다. 사회보장 체계가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양으로 측정되고 화폐단위로 환산될 수 없는 인간의 욕구는 공공적 개입의 대상에서 배제됩니다.

(사이토 준이치의 정리를 빌려서 말하자면,) 과거에는 이처럼 국가에 의해 해석되는 ‘인간의 욕구=국민의 욕구’가 큰 사회적 저항 없이 수용될 수 있었습니다. 국가 단위의 사회보장 체계가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문제에 적절히 개입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 전후, (주로 영미권에서) 세계경기의 침체와 함께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의 불안한 접합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됩니다. ‘과도한 복지지출’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지요. 결국 ‘경제’의 요구 때문에 국민국가의 경계 안에서 보호받던 ‘사회적인 것’이 경제적 요구에 부합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으로 쪼개지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노동연계 복지입니다. 과거에는 그냥 그 사회의 구성원이면 복지혜택의 대상자였는데, 이제는 자신이 노동시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야만 국가의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공공성을 둘러싼 욕구 해석의 정치와 성서

다시 앞서 말씀드린 카페의 임금결정 방식으로 돌아가 봅시다. 여성 청소년 중장기 쉼터에서 시작해 바리스타 훈련을 받고 카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가치’란 자신의 화폐적 가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들리고 있고 자신 또한 상대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필요 임금은 자신의 시장가치를 증명하는 언어라기보다, 안전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싹을 틔우게 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과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의 언어입니다. 즉, ‘나는 여행도 가보고 싶고,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해보고 싶고, 엄청나게 여유 있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쾌적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싶은데 혼자 살기 때문에 적어도 이정도 돈은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비로소 하게 된 것이지요.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객관적 화폐의 양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해석하고 공적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자신을 긍정해주는 관계 속에서 신장되고 발현됩니다. 때문에 이들이 자신의 신체와 생명의 필요를 서로 주장하거나 긍정하는 관계는 단일한 국가, 하나의 사회를 상상하는 주류 사회의 ‘사회적인 것’에 대한 상상에 포섭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연대와 공공성을 상상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측면에서 욕구 해석 정치는 성서 해석과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욕구 해석의 정치는 ‘생명의 어떤 필요를 공공적으로 대응해야 할 욕구로 해석하는 담론’ 대 ‘그러한 필요를 개인/가족에 의해서 충족돼야 할 것으로 재개인화하는 담론’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은 식욕 또는 허기로 보일 수 있는 자연적 욕구의 표출이었을까요? 예수의 먹을 것을 달라는 요구를 보편적인 욕구로만 읽으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이라는 표현은 예수의 욕구를 자명한 것으로, 자명한 신학적 의미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하는 상징입니다. 예수께서 관심을 가졌던 치유와 식사도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동일한 (개인화된) 욕구를 충족하는 행위였다기보다 그 사람들을 억압하던 사회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그들 각자가 제한받고 있던 각기 다른 ‘삶의 폭’을 확장하는 계기였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때문에 예수의 행위는 그 사회에서 정상성의 범주 밖으로 배제되고 있던 이들과 함께 욕구 해석의 정치를 벌임으로써 자명한 사회질서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새로운 공공성을 구축하는 시도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관심을 가졌던 치유와 식사는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 시작되는 지배적 공공성에 대한 반란이 아니었을까요?

 

 


  1. 11
    Jul 2010
    08:04
    No Image notice

    이전 예배마당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한백 Reply0 Views6457
    read more
  2. 04
    Sep 2017
    12:44

    [170903] 하늘뜻-김진호-휴브리스라는 유행병 (잠언 19:25)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3. 04
    Sep 2017
    12:29

    [170903] 주보

    Category주보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4. 02
    Sep 2017
    20:58

    [170827] 하늘뜻-이상철-그들은 모르는‘소돔과 고모라’를 둘러싼 어떤 것 (창세기 19:24-27)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5. 02
    Sep 2017
    20:57

    [170820] 하늘뜻-유승태-구운 물고기 한 토막 : 욕구 해석 혹은 성서 해석의 정치에 대하여 (누가복음 24:41~43)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6. 02
    Sep 2017
    20:55

    [170806] 하늘뜻-김진호-모든 성(sex)은 평등하다 (고린도전서 6:9b~10)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7. 02
    Sep 2017
    20:52

    [170723] 하늘뜻-이상철-그 놈의 웃음이 아닌 그녀의 웃음 (창세기 18:12)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8. 02
    Sep 2017
    20:51

    [170716] 하늘뜻-유승태-같이 식사합시다 : ‘혼밥’ 문화와 교회에 대한 단상 (사도행전 2:46)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9. 02
    Sep 2017
    20:49

    [170709] 하늘뜻-이호은-번역으로서의 질병 (레위기 13:46; 요한복음 9:1~3)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0. 02
    Sep 2017
    20:47

    [170702] 하늘뜻-정나진-21세기 이브 패러디: 문제적 성서, 여성의 눈으로 다시읽기 (창세기 2:7~23)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1. 02
    Sep 2017
    20:45

    [170625] 하늘뜻-이상철-자살에 대하여 (이사야 49:16; 출애굽기 33:23)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2. 02
    Sep 2017
    20:44

    [170618] 하늘뜻-유승태-그가 내 안에, 내가 그의 안에 : 그리스도인의 회심(conversion)과 상호인정의 윤리 (갈라디아서 2:20)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3. 02
    Sep 2017
    20:41

    [170604] 하늘뜻-양미강-제자들의 자리논쟁과 정치 (마가복음 10:35-37)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4. 02
    Sep 2017
    20:39

    [170514] 하늘뜻-이상철-바람이 불어오는 곳 (부제: 성령에 대한 세 가지 에피소드) (창세기 1:2; 요한복음 3:8; 사도행전 2:4)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5. 02
    Sep 2017
    20:37

    [170521] 하늘뜻-유승태-성서가 온다 (사도행전 2:44~47)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6. 02
    Sep 2017
    20:35

    [170514] 하늘뜻-이상철-주님의 기도 7: (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마태복음 6:13)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7. 02
    Sep 2017
    20:34

    [170507] 하늘뜻-김진호-알몸의 '정도령' (이사야서 14:12)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8. 02
    Sep 2017
    20:31

    [170430] 하늘뜻-오세요-옥바라지 선교센터 이야기 (창세기 32:28~30)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19. 02
    Sep 2017
    20:29

    [170423] 하늘뜻-유승태-교회를 만드는 사람들 : 부활의 복수성(plurality)과 하느님 나라 운동 (사도행전 1:3)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20. 02
    Sep 2017
    20:26

    [170416] 하늘뜻-이상철-2017 부활절 메시지 : 우리가 거기에서 그(녀)를 볼 것입니다 (마가복음 16:7-8)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21. 02
    Sep 2017
    20:24

    [170409] 하늘뜻-이상철-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마가복음 14:3-9)

    Category하늘뜻나누기 By관리자 Reply0 Views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80 Next
/ 80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11길 19, 돈의빌딩 1층 안병무홀
02-364-6355(교회), 010-4890-5563(이상철), 010-3043-5058(유승태)
선교헌금, 일반헌금 : 신한 100-022-867226 한백교회
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한백교회
Copyrightⓒ 2012 hanbaik, All Rights Reserved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