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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 3

1741차 예배(2017.2.26.)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이상철 목사

 

 

10.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라

- 마태복음 6:10

 

 

1. 거룩

주님의 기도 세 번째 시간입니다. 2주전에 거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서 ‘거룩하다’는 뜻이 무엇이었습니까?

히브리어로 ‘거룩하다’는 뜻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과 욕망의 카테고리와 신의 그것이 구별된다는 것이겠죠. 이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종교적 특권의식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뜻은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어야 맞습니다. 이것은 십계명 제2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말과 연결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면, 그것이 백인들이 저질렀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차별이든, 이성애자들에 의한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한 차별이든,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르는 이교들에 대한 차별이든 간에, 신의 이름으로 그것을 정당화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고, 가장 거룩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2. 신과 함께 가라

‘거룩하다’는 hallowed be your name. hallowed는 신성하게 하다. 성스럽게하다...그런 뜻입니다. 그리스도교인들만이 아니라, 인간은 모두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거룩하고, 성스러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것이 지난 주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렸던 마지막 질문이었죠. 그러면서,‘신과 함께 가라’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 했습니다. 이 영화는 칸토리안 교단 소속 세 수도사(타실로, 벤노, 아르보)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입니다.

‘마음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이 성스러운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로도 유명하죠. 세 수도사 사이의 화음이 강조되는 것을 보면, 조화와 화해를 이루는 것이 성스럽고 거룩한 삶이 아니겠느냐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종교적인 것’에 대해 묻고 답하게 만듭니다.

 

3. 종교적 언어에 관하여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삶의 6H 원칙있죠. who when where what how why. 이중 종교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단어는 뭘까요? 타실로와 벤노가 여행을 포기해 혼자 남겨진 아보르가 상황이 난감해지자 여행중에 만났던 키아라 라는 여자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키아라도 아보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터였죠. 아보르가 자기가 공경에 처했다고 말하자 키아라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요점만 말해 거기 어디야?”

탐욕스러운 예수회 교장이 아보르가 희귀서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원을 붙여 따르게 합니다. 교장이 그 직원과 통화하면서 제일 처음 한 말이 “지금, 어디야?”입니다.

이 영화는 물론 훌륭한 음악들,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라는 전체 주제를 통해 종교적인 것에 대해 묻고 대답하게 만들지만, 저는 영화에 등장하는 전화 대화를 통해 종교적인 것은 모르겠고 세속적인 언어는 저런 것이구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전화할 때 한번 생각해보세요. 누구세요(who)? 어디야(where)? 뭐해(what) 언제와 언제가?(when) 우리들의 대화는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탐구하죠. 우리는 상대방의 됨됨이를 그가 속한 장소를 통해, 그가 무슨차를 타고,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를 통해 평가합니다. 몸이 담겨있고 거하고 있고, 걸치고 있는 것이 곧 그 사람의 정체성입니다.

6H 원칙중에서 이제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how와 why입니다. 과정과 이유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의 네가 되었니? 그렇게 한 이유가 뭐니? 내러티브를 묻는 의문사들입니다. 성스러운 사람은, 거룩한 사람은 저는 어떤 사람이 살아온 과정과 이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과정과 이유를 전혀 묻지도 관심하지도 않는 한국교회, 오로지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국교회는 너무나 거룩하지 않은, 성스럽지 못한 공간입니다.

한백교회는 어떤가요? 한백은 거룩합니까? 적어도 제가 지금까지 다녀본 교회들 중에서는 한백은 과정(how)과 이유(why)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교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거룩함에 대한, 우리의 성스러움에 대한 고민과 몸부림이 완성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주기도문의 두 번째 문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이렇게 우리들에게 다시 물음을 던지며 자리를 뜹니다.

 

4. 타자에 대한 질문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라”

거룩을 이야기 한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라”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주님의 기도’가 얼마나 정치적인 기도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민중신학을 포함한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등장했던 모든 진보적인 신학들, 모든 변혁적인 운동들의 배경이 되었던 기도가 이 구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와 상관없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존재하는 신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속으로 침투하는 신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살아서 그것을 맛보고 느끼는 사람들이 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라” 이것은 솔직히 우리를 한없이 불편하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미권 철학자 중에서 현대철학의 대가인 리처드 커니(Richard Kearney) 쓴 <Strangers, Gods, and Monsters> 책이 있습니다. strangers(이방인, 나그네, 난민, 외국인노동자...), God, Monster의 특징이? the Other(타자)입니다. 서구사상에서 타자론을 공부할 때, 세 가지 주제 stranger, god, monster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타자가 뭘까요?

 

5. 타자의 존재이유

기본적으로 타자란 우리의 유사성과 동질성을 깨뜨리는 존재이다. 우리교회에 토요일 태극기 집회에서 맹렬히 활동하시는 미국을 숭배하는 아주 보수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분이 출석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신과 이방인은 서구역사에서 대표적인 타자의 목록이었다. 신은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초월한 넘볼 수 없는 존재이기에 타자이고, 나랑 다른 이방인 역시 우리 안으로 진입할 경우, 우리의 동일성에 훼손이 가해질 수 있으므로 타자로 분류하여 배제시켜야 했습니다. 여기에다 하나를 더 보태자면 괴물이 있습니다. 이웃에도 못 들고 이방인도 아닌 존재가 괴물 아닌가요. 그러므로 괴물, 신, 이웃은 서구의 타자론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대상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strangers에 대한 어의(語義)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점점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최종본은‘이웃’입니다. 이웃도 타자의 범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서에서도 이러한 변천을 엿볼 수 있죠. 구약에서는 나그네에 대한 환대가 강조되고, 예수는 이웃사랑을 이야기 하잖아요.

조직의 강화와 공동체의 단합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서구는 타자성을 극으로 몰아부칩니다. 신을 이 땅과 관계없는 하늘 높은 곳으로 고양시켜 절대 타자화 시킨 후에, 신의 대리인으로 교회를 위치시키면서, 교회의 권위와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타자로 낙인찍어 공동체에서 제거하였습니다. 광인, 흑인, 노숙자, 이교도, 유대인, 튀는 여자, 동성애자, 식민지의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었습니까.

타자는 역사속에서 늘 존재하였고, 늘 요청되었습니다. 타자의 현상학은, 어찌보면 그 사회의 결핍을 드러내는 증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가 건강하지 않고, 어떤 음모와 부조리가 횡횡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틈과 균열 말입니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체제는 희생양의 원칙을 작동하여,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동원해 자신들의 치부를 가려왔습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타자의 매커니즘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6. 불편한 타자

그렇다면 같은 타자인 신은 어떤 이유로 경외의 대상이 되고, 이웃은 왜 희생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거리(distance)의 문제에서 나왔습니다. 신과 인간의 거리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 거리는 인간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신에 대한 경외가 어려운가, 이웃에 대한 사랑이 어려운가. 신에 대한 경외는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는 어렵지 않습니다. 신에 대한 경외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고,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그 거리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멀리 있는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구호물자를 전해주고, we are the world를 함께 부를 수 있지만, 그 난민들을 우리나라로 들이고,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살게 한다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멀리 아프리카에 있으면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원조할 수 있지만, 우리 안으로 그들이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환대의 대상이 아니라 적대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이 신을 향한 경외보다 내 안으로 들어온 타자에 대한 사랑이 힘든 이유다

내 안의 도사린 타자의 성격을 잘 설명하는 예가 채플린 영화 <City Lights>에 나옵니다. 내 몸 안으로 호르라기가 들어갔습니다. 내 안에 있는 타자는 영화 속 호르라기와 같습니다. 내 안에 있어 익숙하고 친밀한 것 같지만, 그것들은 내 의지와 의도와 상관없이 활동합니다. 그 결과 나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이렇듯 내 안에 있는 타자는 내 속에서 있지만, 내가 지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기에 힘들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타자 없이는 또 내가 없습니다. 영화 <에일리언>을 기억해보라. 외계에 존재하리라 믿었던 에일리언이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지 않나요. 에일리언은 그렇게 내 안에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밖으로 나오면 나는 죽습니다. 예측할 수 없고 판단 불가능한 내 안에 있는 타자로 인해 내가 살아간다면, 그 타자는 적인가, 아니면 아군인가요.

우리가 혐오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사회에 없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없다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에서 태극기 집회를 하는 타자들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또 어떻게 될까요? 결론적으로 내 안에 있는 타자는 나를 나이게 끔 하는 구성요소가 되고, 이런 이유로 타자의 문제는 나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7. 타자성의 파괴, 그리고 효과

영화에서는 ‘에일리언’이 내안으로 들어왔는데, 만약 신이 내안으로 들어온다면 여러분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신은 또 기분이 어떨까요? 인간과 신 사이에 존재하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감으로 인해, 신은 인간으로부터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었는데, 그 거리를 다 포기하고 우리에게로 온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라”는 신이 가졌던 고유의 타자성에 대한 파괴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 거리감 때문에 우리가 신을 경외할 수 있었던 것인데, 그 하늘이 내게로 온다는 선언을 지금 예수가 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일입니까?

시드니 위고의 몸에서 에일리언이 자라면서, 아니 여성의 몸에서 아기가 잉태되고 자라고 출산을 하면서, 그 여성의 몸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죠. 출산 전과 출산 후의 체질이 바뀌기도 하고요. 생명이라는 타자를 내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질서가 일그러지는 일이 발생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갑니다. 그것이 생명의 원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질적인, 타자적인 세상이 지금 요지경인 세상으로 내려온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땅의 변화가 일어나겠죠. 그래서 혁명적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의 질서가, 세상을 지배하는 로마의 질서, 세상을 지배하는 맘몬의 질서가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고”를 기도하는 이 순간, 모두 역전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의를 행하다가 핍박받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위로 받고, 안식얻는 복 받는 그런 나라가 이제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외치는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확신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의 질서와 맞서 담대하게 맞짱 뜰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이어서 주기도문은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지저분하고 험난한 세상, 이토록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 이처럼 온갖 시기와 질투와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아니고서야,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는 곳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기 위해 높은 산이나, 우주로 로케트를 타고 올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곳 여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 땅 한가운데 도래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이 땅 한복판에 도래할 그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소망하고 기대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이유로,‘주님의 기도’는 2천년 전 예수님이 그때 그곳에서 드렸던 과거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꿈을 간직한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지금 한 목소리로 드리는 오늘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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