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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않은 ‘미래’

: 시간을 둘러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대하여

1740차 예배(2017.2.19)

한백교회 하늘뜻나누기

유승태 전도사

 

31.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 누가복음 24장 31절

 

1. ‘성형’과 시간을 통제하는 권력
지난번 하늘뜻나누기에 이어, 오늘도 ‘얼굴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서 폭로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성형’에 대해 수많은 추측과 구설수가 회자됐습니다. 여성대통령의 성형 문제인지라 섹슈얼리티와 연관된 비판과 옹호가 많았습니다만, 저는 그보다는 ‘젊음’을 향유하는 능력은 권력과 결부돼 있다는 관점에서 이 현상을 바라봤습니다.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최순실, 김기춘도 각종 미용관련 시술을 받았고, 실제 이들의 외모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젊어 보입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소마(그리스어로 몸이라는 뜻)’라는 약이 언급됩니다. 소마는, 상류계층이 자신들의 젊음과 건강 그리고 감정을 나이나 상황과 상관없이 특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신비한 약입니다. 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젊은 외모와 이들이 이용했던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도를 보며 ‘소마’를 떠올렸습니다. 이들 권력층의 젊음을 유지하게 돕는 값비싼 의료기술이 존재했고, 이들은 권력을 통해 획득한 자원으로 그 기술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기술-권력-자원’의 연결은 현대의 특권층에게 소마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 것이지요. 그리고 소마를 빼앗길 때 이들의 젊음은 급격히 무너집니다(예: 조윤선 전 장관과 최순실이 권력을 잃은 후 보이는 외모의 변화). 때문에 소마란 시간을 통제하는 권력의 기술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불평등한 시간과 미성숙한 권력
시간의 흐름 또는 노화의 방향을 거스르(려)는 힘이 권력과 관련돼 있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상징으로 ‘뱀파이어’를 들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는 뱀파이어가 될 당시의 나이로 수백 년을 살기도 합니다. 뱀파이어는 정지된 시간을 살며 노화와 노화의 결과인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그려지지요. 이들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을 먹이나 노예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만약 지성과 사회적 공감능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이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그이는 다른 이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2008년 개봉된 스웨덴 영화 <렛미인>(토머스 알프레드슨 감독)에는 10대에 뱀파이어가 된 소녀 ‘이엘리’와 그 소녀를 사랑하게 된 12살 소년 ‘오스칼’이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신비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잘 연출했는데요,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신비한 매력에 상당히 ‘현혹’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함께 영화를 봤던 한 친구는 오스칼과 이엘리의 관계에 공포를 느꼈다고 감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영화에는 ‘호칸’이라는 노년 남성이 등장하는데, 그는 뱀파이어 장르 영화에 등장하는 노예 인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뱀파이어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호칸은 이엘리를 (인간인 상태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칸은 늙고 약하며 어리숙해 이엘리를 위해 인간의 피를 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12살 소년 오스칼도 결국 호칸처럼 늙고 약해지겠지요.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엘리를 위해 인간을 사냥하기는커녕 자신을 돌보기에도 힘든 몸으로 늙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호칸처럼 버림받겠지요(제 친구가 공포를 느낀 것은 이 지점입니다.). 한국판 영화포스터의 “12살 소년, 영원한 사랑을 만나다”라는 카피는 12살 소년이 자신은 늙고 병들 것이라는 걸 모를 때의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영화 속의 이엘리와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우리 시대에 ‘노화(老化)’에서 자유로운 권력층들은 ‘지성과 사회적 공감능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엘리와 같은 위치(미성숙한 뱀파이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그들과 달리 어떤 약함을 가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시민의 애정과 지지를 받아먹고 건강과 젊음을 유지하며 권력을 휘두르지만, 자신이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에 대한 앎은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대중을 ‘개, 돼지’ 부리듯 하려 합니다.

 

3. 일상을 침범한 ‘가려진 시간’
영화 <가려진 시간>(엄태화 감독)도 불평등한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상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화노(化老)도’라는 가상의 섬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도 소녀(수린)와 소년(성민)의 관계가 그려집니다. 성민은 보름달이 뜬 날 동굴에서 꺼내온 ‘시간 요괴’의 알을 깨뜨렸다가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15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어른이 돼 버립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게 돼, 다른 이들과 큰 시차를 가진 사람으로 갑작스레 등장하게 됩니다. 때문에 갑자기 등장한 ‘어른’ 성민이는 수상한 이방인이자 범죄자로 마을사람들에게 인식됩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수린이는 그이가 실종된 성민이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수린이와 그를 쫓는 형사가 위험에 처한 순간 성민이는 다시 시간 요괴의 알을 깨뜨려 그들을 구하고 세상이 기억하지 못하는 고독한 시간 속으로 홀로 들어갑니다.
영화는 수린이의 이야기를 아동심리학자가 기록하고 풀어낸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한 소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찌 보면, 아동성애자와 그에게 순종적인 피해자 소녀의 모습을 ‘미화’한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의도적으로 판타지 장르를 통해 서사를 구성하고 있으므로, 소위 ‘리얼리즘적 해석’을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영화를 본다면 다른 구도에서 이 이야기를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렛미인>이 불평등한 시간 속에서 불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아동성애자, 사이코패스, 미친놈’의 낙인이 찍힌 성민에게서 수린이가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가려진 시간’을 발견하고, 그와 연대하며 마을사람들과 중재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믿지 않은, 너만은 믿어준 가려진 시간”이라는 카피와 성민에게 손을 내민 수린을 담은 영화 포스터는 이러한 제 해석을 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일상을 침범한 괴물(추악한 어른 남자)이 강동원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이에게 쉽게 범죄자의 낙인을 찍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갖고 있지 못한 존재이며,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주장하지도 못합니다. 한마디로 그는 어떤 전형성 안에 포획된 ‘약자’나 ‘괴물’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히려 다양한 해석과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4. ‘나중에, 나중에’로 유예된 인권 혹은 구원
지난 번 하늘뜻나누기에서 저는 출애굽기 본문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과 인간의 인식에는 시차(인식의 지연)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했습니다(ppt 리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 ‘자체’에 대해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우리는 하느님의 흔적을 통해 하느님을 어렴풋이 알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의 현존은 하느님이 이미 지나가고 없는 그 자리에서 흔적으로서만 확인됩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의 부재(absence)를 통해서만 현존(presence)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는 단순히 ‘한발 늦음’을 뜻한다기보다, 하느님이 없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고통의 자리, 하느님이 있다면 이런 일이 생길 순 없다고 부르짖게 되는 혼돈과 절규의 자리에 우리가 서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충만하고 분명하게 안다고 믿었던 하느님에 대한 ‘지식’, ‘진리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를 겪어내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하느님은 없다’가 아니라, ‘내가 알던 하느님은 없다’일 것이며, 내가 모르던 그 하느님은 내가 알지 못하던 이 고통의 자리에서 함께 고통 받고 있었다는 깨달음일 것입니다(적어도 제가 한백의 신앙전통과 민중신학에서 깨달은 것은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을 기억하며, 세월호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무고한 생명들을 보며, ‘오늘’의 행복을 빼앗긴 사람들, 존재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마저 ‘나중에’나 허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오늘 여기에 함께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지난 16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연설 중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이들이 문재인 전 대표의 성평등 정책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영상 확인) 이들의 ‘돌발행동’은 세간의 비난과 달리 우발적이거나 관심을 끌기 위한 도발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수년 전 광범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던 문재인 전 대표가 최근 기독교 인사들을 만나 입장을 철회하는 태도를 보였고, 성평등 정책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내용을 제외함으로써 반발의 씨앗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동성혼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음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때문에 이들의 절규는 상식과 민주적 절차,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 하에 소수자의 인권을 유예하는 우리 사회의 거짓 질서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의 죽음에 낙담하고 좌절했던 두 사람의 제자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 온전한 ‘인식’을 얻게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본문을 살피며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인식의 순간에 이미 예수는 그 자리를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깨닫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이 본문은, 오늘의 인권과 행복을 내일로 유예당한 사람들에게 찾아가시는 하느님, 그래서 우리가 연대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이며, 우리가 하느님을 만날 현장이 어디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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