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공지사항
4월 둘째 주 2017-04-09
4월 첫째 주 2017-04-09
3월 넷째 주 2017-04-09
3월 셋째 주 2017-04-09
3월 둘째 주 2017-04-09
사진마당

한백교회의 신앙고백문(2)

 

* 신앙고백문 2002

 

천지 만물 안에 더불어 살아계신 하느님
당신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셔서 생명 넘치는 세상을 함께 만드십니다.

우리가 욕망으로 얼룩진 일상과 타협하며 안주하고 사는 동안
세상은 죽임의 그늘 속에 신음하는 아우성으로 가득하고
그 고통의 하소연은 침묵 속에 묻혀버립니다.

이제 출애굽 사건과 갈릴래아 민중 예수 사건 속에 보이신
해방과 생명의 기운이 우리 안에 넘치게 하십시오.
가려지고 잊혀지는 희생양의 얼굴과
모든 비통한 눈물들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일의 희망으로 일어서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공동체로 우리를 모이게 하시고,
그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자세를 배우며
이를 기리는 예배를 나누게 하십시오.
매일의 생활 속에서 살림을 실천하며
모든 것들과 더불어 기쁘게 살겠습니다.


통일 염원 58년, 2002년 10월 20일
한백교회 15 돌 예배에서
한백신앙공동체 성원 일동

 

* 한백신앙고백문 해제

 

천지 만물1) 안에2) 더불어 살아계신 하느님,3)
당신은 오늘도 우리4)를 부르셔서 생명5) 넘치는 세상을 함께 만드십니다.6)

우리가 욕망으로 얼룩진 일상과 타협하며7) 안주하고8) 사는 동안
세상은 죽임의 그늘9) 속에 신음하는 아우성으로 가득하고10)
그 고통의 하소연은 침묵 속에 묻혀버립니다.

이제 출애굽 사건과 갈릴래아 민중 예수 사건 속에 보이신11)
해방과 생명의 기운이 우리 안에 넘치게 하십시오.12)
가려지고 잊혀지는 희생양의 얼굴과13)
모든 비통한 눈물들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일의 희망으로 일어서겠습니다.14)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15) 공동체로 우리를 모이게 하시고,
그 안에서 나눔과 섬김16)의 자세를 배우며
이를 기리는 예배를 나누게 하십시오.17)
매일의 생활 속에서 살림을 실천하며
모든 것들과 더불어 기쁘게 살겠습니다.

 

신앙고백 개정모임(정혜란.김봉숙.김미정.주영은.김진호) : 2002.10.13
공동의회를 거처 최종 확정

 

 


* 한백신앙고백문 2002 해제

한백 15주년을 기념하여 신앙고백문 개정하자는 제안에 따라, 6월 30일 전교인 제1차 토론회, 7월 13~14일 제2차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여기서 토의된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신앙고백문 개정 모임이 구성되었습니다. 이 소모임은 9월 4일부터 3회에 걸친 공식 모임과 수차에 걸친 이메일 대화를 거쳐 ‘신앙고백 개정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9월 29일 제3차 전교인 토론회에서 이 개정안을 심의하였고, 10월 2일 다시 모여서 심의된 내용을 검토하여 개정 초안을 부분 수정?보완했습니다. 이를 10월 6일 운영위원회에 제출하였고, 여기서 다시 지적된 사항을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심의한 끝에 최종안을 오늘 공동의회에 제출하게 된 것입니다.

 

개정모임이 최종 개정안을 위해 논의한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3차 토론회 때 지적된 사상을 점검해서, 제기된 사안을 11가지로 정리했습니다(실제로 토론 과정에서는 좀더 지적된 사항이 고려됐지만, 그것을 일일이 명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전면 혹은 부분 반영하기로 했고, 몇 가지는 반영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운영위원회에서는 표현에 관한 3가지 지적이 있었고, 이것 또한 부분 반영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가해자-피해자-우리’라는 삼분도식에 관하여
우리는 가해자이기도 하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지적에 공감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욕망의 주체인 우리에게서 타자화된 대상인 희생양이, 강요당한 침묵의 존재들이 우리와 별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침묵에 개입되어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이론적으로 ‘희생양’론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두 요소를 동시에 함축하기 위해 작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 2연 2행의 “저들의”를 “그”로 대치함으로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2) 전반적인 기조가 ‘어둡다’는 점에 대하여 (우리는 이것이 두 가지 다소 다른 함의를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① ‘어둡다’를 ‘수동적’인 의미라고 보는 경우
이 지적은 앞의 (1)과 맞닿은 문제제기일 것입니다. 즉 우리가 체제에 의해 소외된 피압박자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체제에 저항해야 한다는 관점이겠지요. 한데 개정 소모임은 우리가 피압박자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제3자인 희생양을 배제하는 일에 체제와 공모한 존재들이라는 점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저희 개정 모임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희생양에 대한 가해 공모자’라는 길항적 요소를 동시에 내포하는 형식을 지향하기로 했습니다.
② ‘어둡다’를 적극적인 저항 행동을 반영하지 않는 의미로 보는 경우
저희는 체제가 우리를 자신의 공모자로 포섭하는 일이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고 보았습니다. 현대의 이데올로기 이론이나 탈근대 이론은 바로 이러한 문제 의식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것에 대한 저항은 단순 명쾌하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좌파’로 대변되는 적극적인 행동주의가 실패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성찰적으로 반영하는 신앙고백문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3) '하소서'라는 청원 어투를 지양하자는 것에 대하여
이 문제 제기 역시 우리는 두 가지로 이해했습니다. ① 하나는 수동적 표현을 지양하라는 것이고, ② 다른 하나는 현대적 어투를 사용하라는 것. 그래서 가능한 부분에서는 고백이나 결단의 어투로 교체했고, 또 일부는 ‘하십시오'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습니다.

 

(4) “기념하다”는 표현 대신 “기리다”는 표현을 쓰라는 것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5)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담으라는 문제제기에 대하여.
지난 신앙고백문의 “우리가 청년, 학생, 노동자, 농민, 지식인, 남성, 여성, ...이다” 같은 표현의 필요성에 대한 주문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표현이 과연 우리의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다중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중신학의 해석학적 지향점인 ‘민중의 눈으로 본다’는 입장을 견지한 앞의 (1)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중요한가, 오히려 타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해체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바울의 말대로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책임을 진 자들이며 나아가 그것을 지양할 책임을 진 자라는 점을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자기 고백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6) 통일 등 우리 현실의 구체성을 담으라는 주문에 대하여
이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다른 의견으로 나뉘었지만, 결론은 그 주문을 반영하는 것이 난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의견은 통일이 우리의 구체성을 나타낸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러려면, 노동해방, 성해방, 나이주의(ageism)?온갖 연줄망 주의 해체 등, 많은 것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 의견은 ‘통일’이 우리의 구체성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하나의 추상화라는 것입니다. 진짜 구체적인 것은 일상 속에서 고통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서 때로는 가해자이고 또 때로는 피해자이며, 그리고 이러한 가해-피해의 세상에서 나날이 경쟁심을 갖고 살아야하며, 그러는 가운데 스스로에게 소외되고 고독해하며, 이러한 내면의 고통을 다른 것에 전가시켜 그 다른 존재를 타자화하는, 그리하여 타자를 희생양 삼는 세상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삶의 실제적인 구체성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7) ‘하나님’/‘하느님’ 용어의 통일성 문제
한백은 이 두 용어를 혼용해왔습니다. 우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판 성서들이 이 둘을 각기 쓰고 있으며, 우리의 찬송가는 하나님을 쓰고 있습니다. 한데 저희는 “하느님”을 쓰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의 뉘앙스의 부정적인 문제의식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8) ‘죽음’/‘죽임'의 용어에 대해
우리는 ‘죽임’이라는 용어가 우리의 신앙고백에서 더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살림’에 대응하는 개념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문화의 왜곡 상황이 순리적인 자연법칙인 양 이해되는 것에 문제재기하고, 우리가 거기에 명백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함입니다.

 

(9) “갈릴래아 민중 예수 사건”을 “갈릴래아 민중 예수의 ‘십자가’ 사건” 으로 고치라는 주문에 대하여
십자가의 의미가 매우 퇴색된 탓에 그것을 첨부하는 것이 의미를 되살리는 데 그리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수식이라고 보았습니다.

 

(10) 반복된 어구를 지양하라는 주문에 대하여
(예컨대, ‘나눔과 섬김’이 4연에 두 번 나온다는 것, 그리고 3연 3~4행의 유사 표현이 네 번 반복되고 있다는 견해에 대하여)
가능한 한 반영하였습니다.

(11) 주해의 필요성 문제
주해가 신앙고백문의 지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는 유용하고, 반대로 그것을 각자가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상반된 견해가 있었습니다. 이에 저희는 융통성 있게 활용하자는 안에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11길 19, 돈의빌딩 1층 안병무홀
02-364-6355(교회), 010-4890-5563(이상철), 010-3043-5058(유승태)
선교헌금, 일반헌금 : 신한 100-022-867226 한백교회
나눔과 섬김의 예배공동체, 한백교회
Copyrightⓒ 2012 hanbaik, All Rights Reserved
XE Login